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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52 18년 제3호] 보건의료이슈 ::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

보건의료이슈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


글. 박상민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청와대 홈페이지



서론 


예측하기 어려운 남북 관계의 변화 속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교류협력 분야는 보건의료이다. 남한과 북한의 건강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북한 주민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보건의료 지원 및 개발협력 동향을 고려하며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상호 관계가 개선된다면 남북 보건의료 인력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사업을 기획하고, 인적 교류를 확대하면서 점진적으로 서로간의 동질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에 본 원고는 국제사회 보건의료 동향을 고려한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과 상호 보건의료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협력 방안에 대하여 기술하겠다.


❚ 국제사회 보건의료 동향을 고려한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 


국제사회 보건의료 동향을 고려하면서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에서 집행되는 보건의료 재원의 흐름을 국제적 관점에서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가 사업비를 지원하는지(공여국/공여기구), 그 자금이 어떤 기구를 경유하는지(경유기구), 실제 현장에서 사업을 실행하는 기구(실행기구)는 어디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홍수나 재해 등의 이유로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급구호요청을 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대북 보건의료 지원 총액(국제사회 대북 개발지원금 + 인도적 지원금 + 남북 직접 보건의료지원금의 합)은 거의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질병부담이 크면 그에 상응하여 국제사회의 보건의료 지원 총액도 증가하는 경향성이 있으나, 북한의 경우에는 정치-외교적으로 국제연합(UN) 제제 하에 있기 때문에 질병부담에 비해서 국제사회에서 지원 받는 보건의료 총액이 매우 부족하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대 이후 보건의료에 배정될 수 있는 재원이 매우 부족한 북한의 경우, 국제사회의 보건의료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보건의료 영역에 대한 지원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면, 남북 간 국민 건강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공여자(Donor)의 입장에서 대북 보건의료지원 기여도를 누적하여 분석하면,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는 한국 정부의 기여도가 가장 높다. 여기에는 남북 직접 보건의료 지원 사업 외에 한국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 등 국제기구를 경유(Channel)하여 지원된 경우가 모두 포함된다. 이 두 기구 모두 모성건강과 영유아 보건지원을 담당하고 있어서, 북한의 모자보건을 증진하는데 우리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2008년 이후부터는 우리 정부로부터의 남북 직접 지원 금액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글로벌펀드(Global Fund)나 세계백신연합(GAVI)과 같이 특정 감염성질환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다자기구의 비중을 확대하였다. 2010년 기준으로 북한의 영유아 예방접종 사업 예산 중 세계백신연합의 지원비중은 약 50%에 육박하며, 나머지 25% 예산도 WHO와 UNICEF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즉, 북한 영유아 예방접종사업은 국제 다자기구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결핵과 말라리아 사업을 지원하는 글로벌펀드의 경우에도 2010년 이후 최근까지 북한에 총 1천150억 원을 지원하였으며, 북한 전역의 결핵관리사업은 글로벌펀드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세계백신연합과 글로벌펀드는 재원 모집 과정과 집행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공여국의 입장에서 분담금을 낼 때 특정 국가에 특정 사업을 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정부(외무부)에서는 주로 항공여행을 할 때 승객들이 지원하는 국제질병퇴치기금을 활용하여 매년 두 기구에 각 400만 달러씩 지원하고 있다. 다만, 해당 기구에서도 외교부와 협의 시 본인측이 북한 지원액을 제시하면서 공여자 입장인 우리나라 정부에게 그에 적합한 기여를 비공식적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2017년 글로벌펀드 담당자의 언론보도를 보면 한국정부의 누적 기부액이 글로벌펀드가 북한에 지원한 금액의 1/3 수준에 머무른다는 지적을 하면서 우리정부의 기여 수준 상향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 다자기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북한의 보건의료 재정 구조는 국제정세와 정치외교 문제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남북협력기금에 의존하여 진행되던 WHO의 대북 모자보건사업은 북핵 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면서 2015년 이후에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2018년 6월 30일을 기점으로 글로벌펀드의 북한전역 결핵관리사업 지원마저 종료된다면, 북한의 모자보건과 감염관리 상황은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제보건의료 동향 속에서 한국 정부는 향후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시 각 영역별로 적합한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및 민간단체를 경유하여 북한의 필요에 맞는 사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지속적인 교류협력 체계를 큰 틀에서 기획·운영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직접적인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사업을 구상할 때 과거처럼 개별 민간단체나 지자체가 분절적으로 북한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미 북한 정부는 다양한 다자기구들을 통해 북한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큰 규모의 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 국한하여 작은 규모로 수행되는 보건의료 사업은 협상력도 높지 않을 뿐 아니라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한 영역에 대해 큰 규모의 사업을 한국 정부와 북한이 함께 기획하면서 북한 내 세부 지역 별로 사업을 적용·수행하고, 동시에 국내 민간단체들이 파트너로 참여하여 협력하는 상호 보완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에 대한 UN 제재가 해제된다면, 지금까지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및 지역 개발은행들과 미국, 일본 등의 양자기구들이 북한에 대규모 개발지원을 수행할 것이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며 가장 효율적인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방안을 기획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며 큰 틀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전문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국제기구나 비영리단체들이 기존에 이미 지원하고 있는 예방접종, 결핵관리, 모성건강 및 영유아 보건의료사업을 확대하고 개선하는 노력과 더불어, 북한 내 질병부담이 높지만 아직 적합한 사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 추가적인 맞춤 교류협력 사업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분야 중 하나가 B형 간염에 대한 모자수직감염 예방사업이다. 북한에서 B형 간염에 대한 유병률은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형 간염의 전파 경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바이러스를 보유한 산모가 출산하는 과정에서 태아에게 전파하는 모자 수직감염이다. B형 간염 모자수직감염 예방사업은 출산 후 24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국제기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단순 B형 간염 예방접종사업이나 감염관리사업의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산전관리-출산-산후관리의 흐름 속에서 신생아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모자보건사업과 감염관리사업을 융합하여, 북한 상황에 맞는 비용효과적인 B형 간염 모자수직감염 예방사업을 구상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미 남한에서는 B형 간염 모자수직감염 차단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국내 연구팀을 통해 북한 내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인 전략임을 국제적으로 검증받았기 때문에, 향후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추진 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인구구조 변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재 북한 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심혈관질환, 만성질환, 암 등의 질병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비감염성질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전략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단편적인 보건의료 지원이나 협력 모델을 넘어서서 경제협력과 국제보건의료지원을 결합하여 창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남북이 모두 시너지를 거둘 수 있는 교류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대북 보건의료지원은 확보된 재원으로 국제기구나 민간단체가 의약품, 특수치료영양제품이나 의료 소모품 등을 국제 조달시스템을 통해 구매한 후, 이를 북한으로 전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앞으로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전략을 구상할 때에는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북한 내부의 생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필요한 의료 소모품이나 처치물품, 의약품, 특수치료영양제품 등의 생산 공장을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모델을 활용하여 구축하고, 상품의 품질을 국제 조달시스템 내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향후 지속적으로 예산이 확대될 우리나라의 국제보건의료 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구매 및 경영 유지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중장기 교류협력 모델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 남북 보건의료 동질성 회복을 위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


남한과 북한은 70년 이상 독립적인 정권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보건의료제도를 운영해왔기 때문에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남북 보건의료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적은 보건의료 용어의 동질성 회복부터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남북 사회문화 교류사업으로 진행되었던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은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최근까지(2015년까지) 공동작업을 유지해온 전례가 있다. 남북 보건의료 교류의 첫 시작점으로 각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상호 협력하는 ‘남북 공동 보건의료 용어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좋으리라 판단된다. 특히, 보건의료 용어사전의 편찬은 각 세부 영역별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협력해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북 보건의료 인력의 활발한 교류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 보건의료 전문인력의 동질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남북 보건의료교육 및 전문인력 양성과정의 차이를 비교·분석하고 상호 전문직 재교육 과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초기에는 남북의 의과대학, 약학대학, 간호대학 등 교육기관의 교과과정을 공동 개발하고, 교육자들의 상호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남북 보건의료 인력들이 상호 사회·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 성장할 수 있는 단기 재교육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남북 보건의료 학술교류를 정기적으로 지원하여 남북 협력 보건의료 R&D 사업을 확대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보건의료인력 보수교육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남북 간 의료인력 면허 제도와 경력 인정 절차를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 결론


저자는 국제사회 보건의료 동향을 고려한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과 상호 보건의료 동질성 회복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간략하게 제안하였다. 단, 현재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느냐에 따라서 북한 보건의료도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여 가장 효율적인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을 기획하고 수행하며, 큰 틀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치·외교적인 이해관계가 가장 적은 남북 보건의료 용어사전 편찬사업을 시작으로, 보건의료인력 교육과정 공동개발, 남북 공동 R&D 연구개발 및 학술대회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남북 보건의료 인력의 지속적인 상호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위에 남북 보건의료 관련 법·제도·재정 체계를 함께 정비하며, 남북 국민들의 보건의료 문화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진행한다면 남북 보건의료 통합이라는 큰 꿈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북 분단 후 서로 상이하게 보건의료체계를 발전시켜 온 역사적 배경과 법률적 차이, 재원 조달 방안의 차이, 의료전달체계의 차이 및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면서 중장기적인 통합방안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 기고문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므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