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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54 18년 제5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가짜 의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가짜 의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글. 이창진 기자(메디칼타임즈)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의사들의 의료사고와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보도들.

 

의료계 내부의 관행과 관례 그리고 의사 사회 카르텔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의료 직종 간 갈등과 다툼 해결방안이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의 최대 현안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의사 선생님 영화 포스터>

 

지난 2010년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 감독 니시카와 미와)은 오늘을 살아가는 의료인과 일반인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초고령 사회에 이미 접어든 일본 사회는 지역 사회 중심의 복지와 의료를 결합한 다양한 케어 시스템을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딴 시골 마을에 의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영화는 도쿄에서 산골마을로 발령받은 젊은 인턴 의사의 시각에서 시작된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등장한 젊은 의사 소마는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운전하면서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각오로 배치된 시골 의원을 방문한다.

 

의원 문을 열었을 때 나타난 풍경은 70대 이상 노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마을의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노(왼쪽)와 젊은 인턴 의사 소마(오른쪽), 사진 출처: 우리 의사 선생님>

 

이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는 나이 먹은 시골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이노이다.

 

그의 환자 눈높이 진료와 노인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소마는 수련을 마치고 이 의원에서 진료하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소마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지만 이노는 웃으면서 '면허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남긴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노가 실종되면서 경찰이 출동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영상으로 진행된다.

 

경찰은 이노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그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과거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인 이노가 의사로 변신한 이유는 시골마을에 어떤 의사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오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60대는 넘어 보이는 마을 이장이 마을을 방문한 이노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무작정 의원에 앉힌 것이다.

 

<목에 걸린 음식물로 위급해진 노인을 심폐소생술로 살리는 이노, 사진 출처: 우리 의사 선생님>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의사 놀이가 세월이 지나면서 생활이 됐고, 마을 노인들도 스스로도 의사로 여긴다.

 

그가 의사가 아닌 것을 아는 간호사와 의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만 빼면 이노는 친절하고 따뜻한 주치의 개념으로 주민들의 마음 속에 각인됐다.

 

목에 걸린 음식물로 위급해진 노인을 이노가 심폐소생술로 해결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명의로 통하게 된다.

 

여기에 사고를 당해 피투성이로 실려 온 남성의 폐에서 공기를 빼내는 시술을 간호사의 눈짓 도움으로 성공하면서 주민들에게 영웅으로 칭송까지 받는다.

 

의사가 아닌 이노의 고민은 노년 여성의 암 진단에서 출발했다.

 

<간호사가 무자격 의사인 이노에게 폐 삽입 시술을 청하는 모습, 사진 출처: 우리 의사 선생님>

 

자녀들을 도시에 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은 남편도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면서 가족들이 지닌 고통을 알기에 암 진단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한다.

 

노인의 자녀 중 유명 병원 의사로 근무하는 딸이 어머니의 증상을 의심해 이노를 방문해 궁금증을 묻던 상황에서 더 이상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암 진단서를 의료기기 업체 직원을 통해 전달하고 자신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떠난다.

 

소마가 어느 날 이노 집에 방문해 “왜 시골마을에서 의사 생활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노의 답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노는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날아온 공을 쳤더니 다른 공이 날아오고, 받아치니 또 다른 공이 날아오고, 그렇게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공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뿐이다. 그러다 마음이 생겼지. 그렇게 점점 빠져들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 암을 의심한 의사 출신 딸과 대화를 나누는 이노 모습, 사진 출처: 우리 의사 선생님>

 

소마에게 “면허가 없다.”, “나는 가짜다.”라는 말을 반복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의사 면허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 무자격자 시술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의료기기 업체 직원을 의사로 변신시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같게 하는 이 영화는 누구보다 의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짜 의사인 이노 만큼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느냐고.“

 

그리고 정부나 의료계에게도 기피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처우 개선에 대한 숙제를 남긴다. 의료진이 기피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근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적절한 당근을 주지 않으면, 이 영화에서 벌어진 상황이 현실 세계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