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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13 5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SBS 드라마 <엔젤 아이즈>

 


글. 양금덕 기자 (청년의사)

 

TV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끊임없이 본 아이는 지금 밖에도 똑같이 폭력과 폭행이 난무하다고 믿게 된다는 배양효과(cultivating influence) 이론.


장기간 반복적인 학습으로 가상의 공간인 TV 속 세상을 실제 현실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논리다. 이처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의 모습과 행동은 현실 속 의사로 비춰지기도 한다. 실제 과거 의학드라마 속 의사들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천재적인 두뇌와 실력을 뽐내는 우월한 존재로 그려져 왔다.


1994년에 방영된 <종합병원>은 내과의사들의 일상적인 모습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인기를 누릴 정도였다. <해바라기>는 한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신경외과 응급실을 사실감 있게 전달하고, <하얀거탑>과 <브레인>은 천재 의사들이 등장해 권위적인 면모를 자랑했다. 의학드라마는 대부분이 방영되기만 해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릴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러한 의학드라마가 최근에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다거나 우정, 의사로서의 성장기를 담기도 하는 것이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드라마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SBS 주말드라마 <엔젤 아이즈>는 기존의 의학드라마와 사뭇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릴 적 사고로 엄마를 잃고 시각장애를 갖게 된 윤수완(구혜선 분)이 박동주(이상윤 분)를 만나 그의 가족들과 어울리며 상처를 치유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동주의 엄마인 유정화(김여진 분)가 뺑소니 사고로 수완의 아버지인 윤재범(정진영 분)의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수술 전 정화가 수완에게 안구를 기증하기로 하고 이 사실을 안 재범이 환자 치료와 딸의 시력을 두고 혼란스러워한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갑자기 코드블루 상태가 된 정화를 재범이 방치하면서 사망한다. 딸의 눈을 뜨게 만들고 싶어 의사로서의 사명을 저버린 것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범을 포함한 의사들 중에는 가족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는 인물이 더 등장한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기 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친구이고 동료인 만큼 욕망과 이상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사건이 전개되는 공간도 병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은 재범과 딸인 수완, 재범의 보호아래 의사로 성장한 동주에게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의사라는 점보다 사람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시청자에게 인식시킨다. 누구나 욕망에 휩싸여 실수를 하게 되고 이를 뉘우치고 사랑으로 용서받는 일련의 성장기를 겪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의사들을 보면서 현실에서 만나는 의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드라마의 극적 전개를 위해 재범보다 더 악한 의사를 대거 등장시키며 긴장감을 고조시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 테면 성공적인 수술을 받은 정화에게 약물을 투여해 뺑소니 사고를 은폐하려한 재범의 동료인 안과의 오영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지는 10여년 뒤에도 사건의 재수사를 막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는 자칫 의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이런 인물들은 현실 속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왜곡하게 만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은 가족을 위해 고민하고 후회하고 치유돼 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의사의 심경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드라마 속 의사들의 모습이 변해가듯 현실 속 의사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때로는 이웃으로 동료로, 가족처럼 건강을 지켜주는 가까운 존재가 됐거나 그러길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담긴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