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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NECA/기관장 소식

[청년의사 인터뷰] 임태환 원장 "임기 중 보의연 위상 확립 힘쓰겠다"

"오늘 허가받은 제품을 어떻게 내일 쓰겠다고 하나"   

[인터뷰] 3대 보의연 임태환 원장 "임기 중 보의연 위상 확립 힘쓰겠다" 



  • 언론사 | 청년의사

  • 기자명 | 박기택

  • 보도일시 | 2014. 8. 18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한국 의료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규제기관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본질은 수입한 제품을 빨리 팔게 해달라는 것이다. 끝장토론도 좋다. 이들이 얼마나 의료기술 개발에 투자를 했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충분하다.”

“양심이 있다면 임상적 근거를 확보하지도 못한 의료기술을 바로 환자에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

보건의료연구원(NECA) 임태환 원장이 연구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작심한 듯 쓴 소리를 쏟아냈다.

2009년 개원한 NECA는 그간 수많은 부침과 외압(?)을 겪었다. 카바수술의 유효성 연구에 대한 신뢰성 논란을 필두로, 눈미백술 관련 소송, 국산 의료기기(또는 치료재료) 출시를 늦추는 규제기관이란 지적 등 보건의료계 안팎에서 공격을 받았다. 특히 산업계에선 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가 국산 의료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연구원의 존재 가치를 거론하기도 했다.

지난해 NECA 3대 원장으로 취임한 임태환 원장은 이런 지적들에 대해 “근거기반의료(Evidence of Based Medicine, 흔히 근거기반중심의료라고 하지만 ‘기반’이라고 표현함이 옳다며)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하면서도 “보험재정 절감, 환자 안전, 의료기술 발전 등 NECA의 순기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일축했다.





Q. NECA 설립 초창기부터 신의료기술평가위원으로 활동했던 만큼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 2007년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제도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 같다. 6년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지금은 원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연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 전 전문평가위원 구성을 위해 대한의학회에 자문을 구했는데, 당시 의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어 그 일을 담당했다. 그렇게 발을 담가 지금에 이르게 됐다.(웃음)


Q. 현재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전문위원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 당시 추천 등을 통해 보건의료 각 분야 250여명의 전문위원을 구성했는데, 이게 지금은 500여명까지 늘었다. 이같은 전문인력 풀(pool)은 신의료기술평가는 물론 보건의료정책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관이 바뀌던, 대통령이 바뀌던 혹은 NECA 원장이 바뀌던 상관없이 큰 그림(보건의료정책)을 그릴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한데, 전문위원들이 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을 구상하고, 전문가들은 그 정책을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치열한 논의와 연구를 통해 결론 내리고, 정부가 이를 다시 검토해 결정하는 형태, 이게 내가 꿈에 그리는 정책 결정 과정이다. 현재 500명인 전문위원이 1,000명만 되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선 의료계와 정부의 소통이 중요하고, 그 매개체가 NECA라고 생각한다.


Q. NECA의 주 업무인 신의료기술평가사업을 놓고 부처 간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일부에서 신의료기술 연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평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맡는게 적합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 사업은 심평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NECA가 맡은 것이다. 보험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곳(심평원)에서 기술의 적절성을 연구하고 평가한다면, 바이어스(bias)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병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립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때문에 NECA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 규제철폐 이야기가 나오면서 NECA 사업들을 그 대상으로 거론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국내에서 미국 AHRQ(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 Quality)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AHRQ(의료관리품질조사국)는 보건의료의 연구발전을 위한 의료 질적 관리와 연구를 위해 1970년대 설립됐으나 산업계와 의료계의 반발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보건의료분야에서 비교효과연구와 환자중심 성과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89년 재출범한 후 현재는 ▲진료지침 개발보급 ▲의료의 질적 평가와 개선 강화를 위한 전략 개발 ▲의료의 접근성 증진 등의 사업을 진행하며 미국 내 중추적 보건의료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Q. 산업계에선 NECA의 활동을 ‘규제’라고 보는 인식이 강하다. 심지어 토종 기술 육성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 국가기술자문위원회 등에 차세대 육성산업인 의료산업의 발전을 NECA가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다더라. 과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원천기술 보호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국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원장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탐색하고 또 산업체의 자료를 받아 검토해 본 결과) 순수한 토종 유망기술이 없었다. 보호하고 싶어도 보호할 기술이 없다는 말이다. 답답하다. 그런데 토종 기술을 육성하게 신의료기술평가를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주장들의 본질은 자신들이 수입한 제품을 빨리 팔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의료기기업체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끝장토론을 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국내 기업들이 의료기술 개발에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또 어떤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알고 있이니 방해니, 규제니 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신의료기술평가를 없애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오늘 개발한 제품을 내일 당장 환자에게 써야한다는 말과 진배없다.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만든 걸 바로 환자에게 쓰게 해달라고 할 수 있나. 그보다 일정기간 임상연구를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도움을 달라고 하는 게 맞다.

수입제품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FDA를 통과한 제품들이 모두 환자에게 바로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 허가에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고, 또 사보험에서 취사 선택하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보험 체계 하에선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제품들도 있다는 말이다.


Q. 산업적 가치를 간과해서도 안되지 않나.

- 당연히 의료기기, 의료기술 육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제된 의료기술이나 의료기기다. 또 의료산업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내수시장이 아닌 세계시장이 타깃이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기술을 ‘토종’이라고 감싼다면 의료산업은 물론, 최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보건의료기술평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까지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산업 발전을 간과하지도 않는다. ‘신의료기술평가 원스톱 서비스’와 ‘제한적 의료기술평가제도’ 등과 같은 제도들을 추진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 원스톱 서비스는 의료기기 품목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해 임상 도입을 6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이달 전면 도입됐다. 제한적 의료기술평가제도는 아직 연구단계에 있는 희귀난치 질환의 치료기술 혹은 검사방법 중 대체 기술이 없어 임상도입이 시급하며 남용의 소지가 없고 잠재적 이익이 큰 의료기술에 한해 조건부 시장 도입 기반을 마련해 주는 제도로 지난 4월부터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Q. NECA의 연구는 대개 해외 문헌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상황과 맞지 않은 연구들로 결론을 내린다는 지적도 있다.

-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지하는 바다. 하지만 한정된 재정 하에서 많은 비용이 드는 자체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래도 의료기관 등에서 구축한 환자 ‘registry’ 자료를 활용하거나, 이미 상용화 되고 있는 의료기술을 비교 분석해 비용효과성 있는 의료기술을 제시하거나, R&D 투자로 개발된 의료기술이 환자치료에 실제로 쓰일 수 있게 정책적 근거를 만들어가는 연구들을 확대 수행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임상시험 최강국 중 하나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행되는 임상연구 대부분이 산업계 후원연구다. 즉, 목적이 있는 연구라는 말이다. 결국 공익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선 정부 주도 연구가 필요하다.


Q. NECA에 대한 일부의 불신은 결국 연구원으로서의 위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과거 카바수술 논란 등이 NECA 위상에 치명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 NECA는 연구기관이다. 그런데 정치 쟁점화된 문제를 연구로 결론을 내리고자 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후 해결책을 제시해서는 안된다.


Q. NECA 권위 확보를 위한 복안이 있나.

- NECA의 위상 확립은 임기 중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취임 후 NECA의 발표를 언론도 의료계도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믿지 않는 상황을 접하며 참 답답했다. 연구기관은 연구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NEJM이나 JAMA와 같은 유수의 학술지에 NECA의 연구를 등재시키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국내에서 누가 딴지를 걸겠나. 또 기관의 국제적 공신력까지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Q. 좋은 구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쉬운 일도 아닌 것 같다.


- 여기 와서 보니 연구자들이 정부에서 요구하는 리포트 쓰기에만 바빴다. 이에 리포트를 최대한 논문화 하라고, 그것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논문이 될 수 있게끔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매주 영어 논문 지도 전문가와 프리젠테이션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듣게 강제하기도 했다. 처음엔 귀찮아했지만, 어느 순간 직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폭탄선언을 했다.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가 JAMA 이상의 저널에 주저자나 책임저자로 논문을 등재할 경우 연구원 예산으론 거한 1,000만원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관련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비가 나가게 생겼다.(웃음)


Q. 연구자들의 역량은 충분한데 그동안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했었다는 말로 들린다.

- 서울아산병원 교수들과 NECA 연구자들의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교수들이 연구자들에게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공무원이라서 9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며 대충 근무할 줄 알았는데, 연구자들이 열성적으로 일할 뿐만 아니라 통계, 경제학, 약학 등 각 분야에서 출중하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NEJM과 JAMA 등의 학술지에 논문을 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Q. 해외 유관기관과의 연계도 중요할 것 같다. 또 해외에서의 위상의 현주소는 어떤지도 궁금하다.

- 그동안 NECA에서는 보건의료분야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와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례로 2013년 동북아시아 최초로 HTAi를 유치·개최했으며, 아이사 국가 최초로 Euroscan 회원국에 가입해 본격적인 신개발 유망기술 탐색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해외 유수 기관과의 협력을 위해서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와 지난 2월 MOU를 체결했고, 캐나다 보건의약기술평가원(CADTH)과 미국 AHRQ와의 MOU도 추진 중이다. 이들 기구와 공동연구 수행 및 정보교류를 통해 국내 상황에 최적화된 의료기술평가 시스템을 정착시킬수 있도록 연구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시아 의료기술평가 선도국가로서 후발 국가들을 위한 운영·연구체계 전수 및 연구협력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지역 의료기술평가협의체(HTAsia Link)’ 사무국으로서 국제협력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아시아 비회원국 및 WHO 직원에게 의료기술평가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기관 초청으로 국내 의료기술평가제도 운영현황 공유 및 방법론 전수를 위한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다.


Q. 앞으로 NECA가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나.

- 연구는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NECA의 본질이다. 연구에 매진하다보면 위상과 권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 보건의료 관련 이슈가 나왔을 때 한 두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NECA의 견해가 결론이 될 수 있게끔, “NECA에 따르면…”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의료계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 NECA의 행보를 냉소적으로 보는 의료인들이 있다. NECA는 보건의료연구기관이다. 그러한 NECA의 활동에 의료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의 신뢰를 얻는 일도 중요한 만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의료계도 적극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