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금덕 기자(청년의사)

 

 

ⓒ(주)아이러브시네마 (주)아이필름코퍼레이션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감염으로 인해 전국이 공포에 휩싸였다.


중동으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한 환자는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겼고 곧이어 아래층 병실은 물론 전국 각지로 감염이 확산됐다. 환자를 간병하던 가족, 병원을 드나든 방문객, 의사, 간호사, 환자를 이송하던 구급대원…. 이중에 기저질환(암·심장·폐, 당뇨, 면역저하질환 등)이 있는 고령 환자는 속수무책으로 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 정부의 통제망에서 빠져나간 감염자는 건축박람회, 회식, 목욕탕, 심포지엄 등 전국 곳곳을 누볐고 대전, 경기, 부산 등지까지 확진자가 늘었다.

 

결국 6월 20일을 기준으로 메르스 확진자는 총 166명, 사망자는 24명으로 자가 및 기관 격리자가 4,035명에 달했다.

 

이는 그 흔한 재난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2015년 5월 20일, 대한민국 평택의 한 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가 입원하면서  벌어진 일로 한달이 지나도록 사태를 지켜보면서 2년 전 개봉한 영화 <감기>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 <감기>는 호흡기로 감염돼 치사율 100%인 변종 바이러스가 국내 발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으며 초당 3.4명이 감염돼 분당도시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정부는 분당 폐쇄 조치를 내린다. 이 과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격리된 사람들은 감염자와 비감염자와 섞이면서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폭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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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바이러스가 일반 감기처럼 호흡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점에서 메르스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의 한계에서 비롯된 재난이라고 한다.

 

병실 기본이 6인실로 실제로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기거해 2배이상이 머문다. 식사도 빨래도, 화장실까지 환자와 보호자가 공동으로 사용하니 돗떼기 시장이라는 말도 전혀 낯설지 않다. 거기다 지인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전국 각지에서 병문안 오는 이들로 병실은 주말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메스르 사태 역시 보호자와 병문안 온 지인들이 일종의 감염매개체가 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환자들은 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두 세 곳을 돌아다니는, 이른바 ‘닥터쇼핑’이 만연해 있다는 점도 전염 확산에 기여했다.

 

영화 <감기>에서는 대중교통, 약국, 학교 등 일상 속에서 감염이 확산됐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감염이 확산된 병원은 이름만 병원이지 그야말로 일상의 축소판과 다름없는 공간이다.
발병지인 사우디처럼 낙타와 직접 접촉이 없음에도 국내서 메르스가 확산되고 사망자가 급증한 것은 이같은 병원 내 감염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기저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면역이 정상인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에 대한 감염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환자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면,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와 국민의 신뢰 부족 또한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애초부터 국민에게 적절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의료진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아 확산 방지를 하지 못했다. 불안한 국민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SNS에 의존, 불안감만 키웠다. 무지에서 비롯된 막연한 불안감은 이기주의로 변화돼 감염된 사실을 숨긴 채 살길을 찾게 했다. 영화의 감기에서 주인공이 감염된 딸을 숨긴 것처럼.

 

영화에서는 격리자에 대한 치료법이 없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군인도, 의료진도 서로 감염사실을 숨기고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취재하면서 만난 의료진들은 하나같이 전문가가 부재한 정부의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선의 병원과 의료기관은 ‘메르스병원’이라 불리며 기피대상이 되고 의료진과 가족까지 기피상대가 되면서 ‘메르스 왕따’까지 당하는 꼴이 됐다.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 특유의 의료전달체계와 병실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감염병에 대한 국민의 무지와 정부의 잘못된 판단이다.

 

우리는 수십 년 전부터 민방위 훈련을 해왔고 재난대응 관련 부처도 적지 않게 있다. 국가재난정보센터에도 재난대비 항목에 감염병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감염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영화 <감기>, <연가시>, <컨테이젼>, <월드워 Z> 등 각종 재난 영화를 통해서 전염병 발생에 대한 극한 공포심만 키운 것은 아닌가. 영화는 영화일 뿐 실상은 이러하다는 정확한 정보와 교육은 누가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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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역시 매년 병원평가나 JCI 인증 등 각종 평가에 맞춰 시설과 기준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일 년에 단 한번이라도 감염관리시스템을 운영하며 모의 훈련을 하기는 했는가.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기존에 갖춰둔 감염관리시스템을 풀가동 해봤다고 한다. 이 병원은 최첨단, 최고의 시설을 갖춘 상태지만 실제로 메르스 확진자가 전원돼 왔을 때는 의료진은 물론 직원들이 우왕좌왕하고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나마 시설이나 여건 등이 잘 갖춰서 의료진들이 대응을 잘했고 환자도 회복했지만, 1인이 운영하는 의원이나 동네 약국의 사정은 어떻겠는가.

 

또 감염성질환에 대한 국민의 무지로 메르스가 발생한 병원에 있었다는 이유로 입원도 외면당하고 장례식장마저 외면당하는 경우까지 있다.

 

더 안타까운 건 이미 신뢰를 잃은 정부의 목소리를 국민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메르스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민과 의료진이 함께 감염병 퇴치에 힘을 모아야 한다.

 

WHO(세계보건기구) 마가렛 찬 사무총장에 따르면, 조류독감, 사스 등 메르스같은 전염병은 지역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부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그만큼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기 어려웠다는 게 이미 해외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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