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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2 1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죽음을 앞둔 자의 선택- 영화 <셀프/리스>

 

 

 

 

 

글. 신동욱 교수(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자수성가한 부동산 재벌 데미안 (벤 킹슬리 분). 그에게 6개월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다. 그는 피닉스 바이오제닉 (피닉스= 불사조)하는 회사의 연락처를 받은 쪽지를 전달받게 되는데, 이 회사의 올브라이트 박사 (매튜 구드분) 로부터 믿기 힘든,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 들어온다.

유전공학으로 배양해서 만들어낸 건강하고 젊은 새 육체에 그의 기억을 이식시키는 쉐딩(Shedding)이라는 기술을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살게 해 주겠다는 것.  새로운 육체에 살아야 하므로 지금의 데미안으로서는 더 살수 없고, 데미안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도 없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알려서 안된다.
 

 

Shedding을 제안하는 올브라이트 박사: “Do you feel immortal? (불멸이라고 느끼십니까?)” ⓒ(주)이수C&E

 

죽음을 앞둔 데미안은 사회운동을 하는 딸 클레어(미셸 도커리분) 을 찾아가서 후원금을 전달하려고 한다.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 그러나 딸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항상 못마땅해했던 아버지가 내미는 봉투를 ‘항상 아버지는 돈이면 다 해결한다고 생각하는군요’ 라며 거절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후원금 봉투를 거절하는 딸 클레어 ⓒ(주)이수C&E


 

고통스런 증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던 고심 끝에 쉐딩을 받기로 하고, 올브라이트 박사의 지시에 따라 친한 친구와 함께 뉴올리언즈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일부러 쓰러져서 911에 실려간다. 그가 실려간 곳은 올브라이트 박사의 비밀 실험실. 쉐딩을 통해서 데미안의 기억은 새로운 육체로 옮겨 심어진다.

 

 

쉐딩이 끝난 후: 새로운 육체에서 원래의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는 데미안 ⓒ(주)이수C&E

 

자신의 기억을 젊은 사람의 몸에 옮겨 심음으로써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된 데미안 (라이언 레이놀즈 분)은 농구를 즐기고, 젊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된다. 단 올브라이트 박사가 때때로 건네주는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

약을 하루 빠뜨린 날, 두통과 함께 악몽과 같은 환각을 경험한다. 한 대여섯 살도 안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 그리고 호박모양의 물 탑. 이것이 무엇일지 의문을 가진 데미안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 물탑이 세인트루이스에 있다는 것을 알고, 휴가를 다녀오는 것처럼 위장하여 세인트루이스로 향한다.

 

 

환각에 나오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호박 물탑 ⓒ(주)이수C&E


 

물탑 옆의 집에서 자신 육체의 본래 주인은 직업 군인이자 사실은 한 가정의 가장 마크였고, 아픈 딸아이 애나의 병원비를 위하여 사고로 위장하여 자신의 몸을 팔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본인의 기억을 이식한 육체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육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다른 사람의 육체였고, 박사가 먹으라고 했던 약은 몸의 원래 주인의 기억을 억제하는 약으로 약 복용을 빠뜨릴 때 마다 몸의 원래 주인의 기억이 나온다는 것을. 
 

 

자신의 육체가 원래는 마크였다는 것을 깨달은 데미안 ⓒ(주)이수C&E


 

이때 마크의 아내 매디 (나탈리 마르티네스 분) 가 집에 돌아왔지만, 이내 데미안을 미행한 올브라이트 박사의 부하들이 찾아온다.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매디는 그냥 사고로 위장하여 죽일 것이라면서 데미안은 다시 본인의 새 삶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데미안은 매디와 딸 애나를 보호하기를 선택하고, 올브라이트의 부하들을 모두 죽인다. 
 

매디의 핸드폰에 있는 예전 애나의 생일파티 장면 동영상을 보는 데미안 ⓒ(주)이수C&E

 

데미안은 동영상 검색을 통해 올브라이트 박사가 사실은 쉐딩을 개발한 젠센 박사가 제자의 몸을 빼앗아 들어가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유지해주는 약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다. 그는 불치병이 걸렸던 자신의 어린 아들을 올브라이트를 통해 쉐딩했던 친구로,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의 성분을 분석하여 알아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의 부하들이 다시 와서 매디와 애나를 납치해간다. 데미안은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올브라이트의 연구소로 침입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올브라이트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이제 올브라이트를 제거하고, 쉐딩을 유지할 수 있는 약 성분까지 알아낸 데미안. 그는 아버지의 친구였다면서 딸 클레어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봉투를 내민다. 후원금 수표가 아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유리창 너머로 딸이 감동하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데미안은 떠난다. 
 

딸에게 수표가 아닌, 편지가 든 봉투를 내미는 데미안 ⓒ(주)이수C&E

 

“나는 데미안 헤일, 너의 몸을 샀던 사람이야. 네가 사라졌던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곧 알게 될거야. 나는 네가 나에게 주었던 몇 달간에 대해 감사하고 싶어. 음.. 나는 이 약을 며칠간 먹지 않았고, 너는 침대 위에서 금단증상을 겪었을 거야.  네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미 내 자신이 사라짐을 느끼고 있고, 나는 곧 사라질거야.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 마크. 너의 아내가 해변에 있을거야. 이제 매디는 네가 잘 돌봐주렴. “
데미안은 그렇게 마크에게 인사를 남기고, 스스로 사라져버렸다. 
 

마크에게 동영상으로 인사를 남기고 사라진 데미안 ⓒ(주)이수C&E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스토리가 빈약하고 뻔한 결말이라면서 다소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죽음을 앞둔 말기 상황에 놓은 사람의 심리에 대해 독특한 설정을 통해 질문해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질문 1. 데미안은 왜 불확실성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새로운 몸을 얻었을까?


데미안은 남은 시간 동안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쉐딩은 검증된 적이 없는 기술이고, 성공해도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야 하고 본인의 존재 자체는 밝힐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혹시라도 잘못되면 바로 죽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쉐딩을 택했을까? 단순히 불멸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으로만 볼 수 있을까?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 없는 경우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한다. 본인이 표준적인 요법에 더 이상 듣지 않고, 통증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점차 심해지고, 몇 개월 더 살기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환자라고 가정해보자. 앞에 놓인 선택은 새로 개발되고 있다는 항암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항암제 치료를 받았을 때 증상이 호전되고 생명이 몇 개월 정도 연장되는 경우는 5%에 불과하고, 나머지 환자들은 치료로 인한 심한 부작용을 겪고 이로 인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의 선택은?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볼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일 것일까?
 

제 3자가 객관적으로 이득과 위험의 확률을 계산하는 경우 이 항암제를 시도하는 것은 대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시도를 하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료윤리학자들이 항암제의 1상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환자들이 과연 위험과 이득을 제대로 따져서 동의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이다.  
 

실제로 생명의 위협에 처한 환자들은 위험하고 성공률이 낮은 치료를 약간의 희망만 있다고 해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이는 그들이 그런 상황에 있지 않았을 때는 하지 않을만한 선택이다. 더 이상 검증된 치료 방법이 없는 말기암 상태가 되면, 본인의 상황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되지 않은 항암제라도 써보고 싶어하고, 임상시험에도 참여하고자 한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 부모님을 모시고 응급실에 갔는데, 수술을 안하면 결국은 돌아가실 상황에서는, 수술이 성공하지 못하여 결국 중환자실에서 오래 고생만 하실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1% 미만의 회복가능성을 위해 수술을 결정하곤 한다.
 
질문 2. 데미안은 왜 매디와 안나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결국 자신이 소멸되는 길을 택했을까?


원래의 데미안은 성공을 추구하는 목표지향적이고 다소 냉혹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 찾기는 올브라이트 일당에 의해 발각되었지만, 그는 사실은 생면부지의 사람인 매디와 애나를 버리고 얼마든지 새로운 몸으로 즐기면서 살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왜 매디와 애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켜내고, 결국 본인의 사라지면서 모녀의 남편을 돌려주는 길을 택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고, 후회되는 것들을 정리한다. 데미안이 처음 병에 걸렸을 때 후원금 수표를 들고 딸에게 찾아간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다만, 그 표현이 너무 서툴러서 딸과 오히려 서로 화를 내고 헤어졌을 뿐이다. 새로운 몸을 입은 데미안은 자신이 산 육체가 아픈 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버렸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의 생일 파티 동영상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 가정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자신에게 잠시 더 주어진 시간의 의미라는 것을.

결국 모든 과업을 완수한 후, 딸에게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진심이 담긴 편지를 통해 딸과 화해할 수 있었고, 좀 더 마음 편하게 자신의 사라짐을, 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를 했다고 느낄 때 좀더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최근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 때 보다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죽음을 그냥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부정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전혀 과학적이거나 검증되지도 않은 치료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큰 비용과 위험이 수반되는 치료를 선뜻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죽음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더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서운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작더라도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연명의료의 대안인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통증 등 괴로운 증상의 조절뿐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노력이다. 

 

셀프/리스는 기억을 이식한다는 영화적 상상은 낯설지만, 말기 상황에 놓인 환자들이 겪는 심리상태를 엿보면서 여러 생각도 해보고 잠시 감정이입을 해볼 수 있게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