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고야 기자 (동아일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웃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빵….

 

2012년 개봉한 일본영화 ‘해피해피 브래드’는 아름다운 섬 홋카이도에 위치한 도야코 호수를 배경으로 한다.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시골로 들어온 젊은 부부는 카페 ‘마니’를 열고 조용히 손님을 맞는다. 매일 아침이면 남편 미즈시마(오오이즈미 요)는 정성스레 만든 빵을 오븐에 굽고, 아내 리에(하라다 토모요)는 남편을 도와 손님을 대접할 음식 재료를 손질한다.

 

영화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다.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지만 실연을 당하고 우발적으로 카페 마니를 찾은 여성, 아빠와 헤어지고 집을 나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온 노부부까지.

 

이들은 카페 마니에 들어올 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찾아왔지만, 카페를 나설 때의 모습은 들어올 때와 다르다. 마음이 따뜻한 이웃들과 미즈시마 부부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통해 치유 받고 상처투성이였던 마음을 추스르고 카페 문을 나서게 된다.

 

마법처럼 이들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빵’이다. 함께 빵을 나누며 닫혔던 마음을 열고, 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속 얘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카페 주인 미즈시마가 갓 구워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은 금방이라도 스크린에 손을 뻗어 집어 먹고 싶을 만큼 먹음직스럽다. 아내 리에가 밭에서 따온 토마토와 들에서 수확한 밤 등이 밀가루 반죽과 만나 손수 구운 (영화 제목처럼) ‘행복한 빵’이 완성된다.
 
주말에 무심코 영화를 봤다가 무척이나 빵이 먹고 싶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마음속에는 ‘글루텐이 들어있는 밀가루 빵을 먹으면 살이 찌겠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내 ‘이웃과 하나 되는 빵’ ‘아픔을 치유해주는 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결국 식욕과 다이어트 사이를 오가는 갈등만 남은 채 빵을 포기하고선 그닥 개운치 못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들은 언제부터 식품 성분과 건강을 결부 지으며 살게 된 걸까?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날씬한 몸매 유지를 위해? 질병 없이 오래 살기 위해?

 

유통업계의 식품담당 기자로 활동하며 공중보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위와 같은 문제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현대인들이 먼저 스스로 날씬한 몸매를 갖길 원하고, 스스로 건강을 위한 식품만을 챙겨먹기 시작한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은 건강해야만 해’ ‘식품을 가려서 먹어야만 해’라며 건강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일까, 후자가 맞는다면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굴까.

 

기업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고, 관련 이슈를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시장 점유율은 곧 기업의 존재이유이고, 경쟁사와의 연도별·분기별·월별 매출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젠가부터 식품업체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소비자들 앞에 건강 이슈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식품첨가물에 관한 논쟁이다. 커피업계의 후발주자인 A업체는 업계 1위인 B업체를 겨냥해 “우리 커피믹스에는 인산염 성분이 들어있지 않아 건강에 좋다”고 광고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커피믹스에 들어가는 성분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나 어떤 궁금증도 없었던 소비자들은 A업체의 광고가 시작되자 “그래, 우리는 지금까지 건강에 해로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라며 흔들렸다. B업체의 커피를 마시던 꽤 많은 사람들이 A업체로 갈아탔다.

 

하지만 식약처의 확인 결과 커피믹스 한 봉지로 섭취하는 인은 6mg 수준에 불과하고, 몸에 해로운 수준으로 커피믹스를 마시려면 하루 820잔 이상을 마셔야만 했다. (모두가 알겠지만 하루에 커피를 이 수준으로 마셨다간 과다한 인 섭취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병원에 실려 갈 것이다.)

 

또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건강이 걱정된다면 B업체 커피믹스에서 A업체 제품으로 갈아탈게 아니라, 커피믹스 자체를 아예 안 먹으면 된다. 하지만 식품회사는 끊임없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건강괴담을 양산하고, 또 소비자에게 이를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다.

 

또 다른 예시를 보자. 참치 캔에 이어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연어 캔을 출시한 회사 C, D가 있다. C의 연어 살은 붉고, D의 연어 살은 비교적 희다. 흰 색 연어 살로 통조림을 만든 D업체는 C업체를 향해 “연어는 불에 익히면 살이 하얗게 된다. C업체가 일부러 붉게 보이려고 색소와 식품 첨가물을 넣었다”고 공격했다.

 

언뜻 들으면 C업체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식품에 나쁜 성분을 넣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업체는 불에 익혔을 때 각각 흰색이 되고, 붉은 색이 되는 품종이 다른 연어를 사용했다. C업체가 통조림에 넣은 ‘식품 첨가물’은 부드러운 연어 살이 부서지지 않도록 넣은 파프리카 국물이었다. 두 업체의 연어 캔 제품은 결국 어떤 것을 먹어도 문제가 없는 정상 제품이었고, 결국 국민들은 첨가물에 대한 기업정보에 또 한번 휘둘린 꼴이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날마다 새로운 건강이슈가 기업들의 신제품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빵의 경우로 되돌아 가보자. 한 제과업체에서는 신제품을 내고 “우리 빵에는 쌀을 섞어 밀가루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이 적으므로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좋다”라고 광고한다. 또 다른 식품업체에서도 “우리 제품에는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아 아이들 건강에 좋다”고 선전한다. 이 대목에서 일반 소비자는 그동안 관심 없었던 ‘글루텐’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고, ‘글루텐=건강의 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글루텐프리(gluten-free) 제품들은 애초에 밀가루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만성 소화 장애를 가진 셀리악 병 환자나, 밀가루를 먹으면 두드러기나 현기증이 생기는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실제로 심각한 건강상의 이유로 밀가루를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0.1%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글루텐은 살을 찌우는 직접적인 원인 성분도 아니다. 글루텐을 피하려고 쌀이나 감자 등 다른 탄수화물 군을 섭취하면 오히려 평소보다 많은 칼로리를 먹게 돼 살이 찔 수도 있다. 건강과 미용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건강에 이상이 없는 일반인이 돈을 더 주고 사먹지 않아도 되는 제품들을 만들어 소비자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 식품이나 절제 없이 마음껏 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식단 조절을 통해 건강을 챙기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건강 관련 이슈에 무작정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자사에 유리하도록 무리하게 식품·건강 관련 괴담을 양산한 기업들의 논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웃이 호의로 건네는 빵에서 ‘글루텐’을 떠올리며 다이어트 걱정을 하고, 누군가가 성의로 내놓은 음식에서 근거 없는 ‘합성첨가물’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면 특정 식품기업들의 논리에 자신도 모르게 깜빡 속아 넘어간 게 아닌지 조용히 돌이켜 봐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식품 관련 이슈만이 아닌, 국민 건강을 둘러싼 의약품·의료서비스 등 보건 분야 전반에 걸쳐 유사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의 논리에 휩쓸려 앞서 살펴보았던 영화의 빵처럼 ‘이웃과 하나 되는 음식’ ‘아픔을 치유해주는 음식’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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