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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23 4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영화 <화장(REVIVRE)>

 

 

 

 글. 양금덕 기자(청년의사)

 

 

ⓒ명필름

 

 

“임종하셨습니다.”

 

4년간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결국 숨졌다.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던 아내의 마지막은 너무도 조용했다. 눈물은 나지 않고 며칠째 누지 않은 소변을 누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최근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은 주인공 오상무(안성기 분)의 아내(김호정 분)가 죽는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아내는 뇌종양으로 두 차례 수술을 했지만 또다시 재발했다. 화장품 대기업 중역인 오상무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면 아내의 병수발을 드는 헌신적인 남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마음 속에 담아둔 비밀이 있다. 회사 부하직원인 추은주(김규리 분)를 연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오히려 젊은, 생명을 상징하는 추은주에게 대한 욕망은 점점 커지게 되는데….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김훈의 단편소설 <화장(火葬)>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이성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명필름 ⓒ명필름

소설에서는 병 들어가는 인간의 몸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그것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담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겪는 일련의 상황들이 보다 시각적으로, 좀 더 본능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느꼈다.

 

오상무는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면서도 신제품 출시를 위한 광고 카피를 선택해야 했다. 주제는 ‘내면여행’과 ‘가벼움’으로, 이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직원들과 회의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상을 온 추은주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이 영화가 불륜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은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불에 태워 처리하는 장법(葬法)인 화장(火葬)과 화장품을 바르거나 문질러서 얼굴을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이 이중적으로 배치돼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영화에는 오상무처럼 간병과 일을 병행하거나 오롯이 간병에만 시간과 돈을 다 쏟아야하는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환자가 생기면 생업을 포기하고 간병을 하는 이들이 많다. 예부터 우리 정서에는 간병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자, 가족 내에서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당연 시 여겨져 오기도 했다.

 

더욱이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병원치료를 받을 때 한 병실에 여러 명의 환자가 머무는 까닭에 치료 이외의 간병은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오상무처럼 개인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간병인을 둔다 하더라도 저녁시간은 오롯이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 만큼 투병이 길어질수록 보호자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도 수년간 간병을 하면서 지병인 전립선비대증이 더 악화되기도 했다.

 

이같은 환자의 보호자에 대한 심적·물리적 고통을 줄이고자 최근 정부는 포괄간호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아직은 시범사업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일명 ‘보호자 없는 병동’을 만들어 전문간호사에 의한 간호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환자의 치료와 병실환경 등에서 보호자와 간호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이미 포괄간호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환자의 정서적 위안과 안정까지 책임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 함께해 온 보호자의 위로와 의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환자의 보호자에 대한 고통과 어려움 등에 대한 관심은 소외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간병에 대한 물리적, 심적 부담은 덜어낸다고 하더라도, 가족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에는 보호자를 위한 소규모의 치유 건강 강좌나 민간 의료기관의 상담 정도만 간간이 있는 정도다.

 

지금도 암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에 다르면 2012년 한해에만 222만건의 암이 새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매년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 수만 1만여명이 넘는다. 5년전에 비해 20%정도가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암도 일종의 만성질환으로 불리고 있다. 더 이상 환자 개인의 고통이 아닌 보호자까지 장시간 고통받는 사회적 질병인 만큼 환자와 보호자까지 보듬을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