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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1 12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수혈, 어디까지 믿습니까 - 영화 <박쥐>

 

 

 

글. 양금덕 기자(청년의사)

 

 

ⓒCJ엔터테인먼트

 

“수혈 받는 피를 내가 고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건데….”

전염병에 걸려 사망 직전에 이른 신부 상현(송강호 분)은 응급처치 과정에서 수혈을 받고 목숨을 건진다. 그는 ‘엠마누엘 바이러스’라는 감염병 치료를 연구하는 엠마누엘 연구소에 자원해서 갔다가 병에 걸린다. 500명이 같은 이유로 지원을 떠났지만 살아온 것은 그가 유일하다. 이에 사람들은 상현을 마치 신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아픈 다리와 불치병을 낫게 해줄 것이라고 열광하고 기도를 받으러 모여든다.

 

 

ⓒCJ엔터테인먼트

 

 

2009년 개봉된 영화 <박쥐>는 정체모를 수혈을 받고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이야기이다. 몸은 피를 원하지만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신앙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현과 주변의 인물들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수혈은 출혈과다뿐만 아니라 신생아 치료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돼 왔다. 수혈의 역사는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영화에서처럼 동물이나 타인의 혈액을 마시는 방법으로 마치 생명을 살리는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급기야 1942년에는 병에 걸린 교황 이노센트 8세가 젊은 남자들의 피를 마시는 엽기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이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간의 수혈이 이뤄지면서 1930년에 들어서 현대적인 수혈이 시작됐다. 전쟁으로 인한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는 목적으로 수혈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또 이후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혈액으로 감염성 질환이 전파되는 부분을 차단하는 수혈의 질 관리도 한층 강화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혈에 대한 또 다른 이슈가 떠오르고 있다. 수혈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이유인 즉, 수혈이 출혈과다 이외에는 오히려 감염, 심장문제, 유전자 변이, 급기야 사망에 이르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2000년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혈이 안전한 치료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과학적으로 수혈이 환자에게 문제가 있는 치료법이라는 것이 규명됐다”고 설명했다.

 

2010년 WHO(세계보건기구)는 수혈을 최소화하라고 천명했고 미국에서는 5년 만에 수혈량이 40%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수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준을 과거 10.0g/dL에서 7.0g/dL로 조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수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관행 때문에 좀처럼 수혈이 줄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혈액관리 정책의 올바른 방향’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여기서 박종훈 교수는 “병원에서는 여전히 관행처럼 수술시 수혈을 하고 환자들이 수혈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혈이 과학적으로 안전한 치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수혈이 만병통치약인양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수술시 출혈을 줄일 수 있는 고용량 철분제나 수술기법 등도 생겨났다. 그만큼 수혈이 필요한 경우는 더 제한적으로 되어 가는데 국내에서는 한 번도 수혈량이 줄었다는 보고가 없다. 

 

정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앞서 말한 다양한 대체법은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비싼 의료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환자도 의료진도 꺼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헌혈로 어렵게 모은 혈액을 물 쓰듯 쓰고 있는 실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긴급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할 때 ‘인력 수혈’이라거나 ‘수혈로 기사회생하다’ 등의 표현을 종종 써왔다. 이제는 ‘수혈 바로 알기’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헌혈은 두말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수혈 또한 매우 중요한 치료법이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의술이 좋아진들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

 

상현의 피만 얻으면 먼 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 매달리는 노 신부(박인환 분)나 상현의 손길로 치유 받을 거라며 매달리는 환자들…. 상현은 말한다. 그저 심리적인 것뿐이라고. 수혈 하나에 (의사가) 더 신경써줬다고 느낀다는 오늘날의 환자들... 다소 닮은 듯해 씁쓸하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