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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9 8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똥, 오줌 그리고 역사 - 적나라한 배설의 역사책 <똥오줌의 역사>-



글. 노진섭 의학기자 (시사저널)

 

ⓒ pixabay



책 ‘똥오줌의 역사’는 배설에 관한 인류사다. 똥과 오줌이라는 직설적 표현에다 역사라는 진지한 단어를 붙인 작가는 누구일까. 이 책의 저자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작가, 기자, 사진가이면서 여행가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기로 유명하다는데, 그가 쓴 책 ‘식인종, 식인풍습의 역사와 기이성’이나 ‘털의 역사와 기이성’ 등에서도 괴짜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 첫머리에 "위선적인 세련 따위는 집어치우고"라고 적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허무맹랑하지 않다. 책은 4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고 정밀하다. 요강.의자변기.화장지의 역사, 도시와 배설의 역사, 공중화장실의 역사, 사회 집단과 배설의 역사, 인간 해동에 대한 배설적 접근, 신앙과 미신과 배설의 역사, 농업과 배설의 역사, 예술과 문화와 배설의 역사, 의학과 약학과 배설의 역사 등을 다뤘다. 책을 읽은 후, 한 마디로 똥.오줌 박물관을 돌아본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이 책 표지에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을 붙여두었다.

 



"배설의 역사는 사회적 현대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배설물, 특히 대변은 수많은 사회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배설을 중요시 여기지 않은 인간의 활동은 없다. 의학, 도서학, 종교, 철학 등은 모두 그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또한 배설활동은 전 대륙에서 동일한 발달과정을 거쳐온 흔하지 않은 인간활동이기도 하다.” 


사람은 평생 먹고 배변한다. 섭취와 배변은 생존이다. 그러나 우리는 먹는 것에 신경 쓰는 것만큼 ‘싸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껏해야 건강검진을 받을 때 소변과 대변 검사를 받는 정도다. 또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하지만 화장실은 실망스러운 식당도 많다. 최근 위암은 줄고 대장암이 급증세다. 밤새 술 마신 후, 속을 풀어준다며 콩나물국을 찾지만 대장을 달래주지는 않는다. 대장에 폴립이 수십 개 생겨도 아무런 증상이 없으니 대장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우연히 암을 발견하면 그때야 대장을 살펴보느라 호들갑이다.

 

평소 대변을 관찰하는 정도만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라는 게 대장암 전문가들의 얘기다. 몇 해 전 대장암 전문가인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 초대원장과 대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대변 색, 냄새, 모양으로 질병 유무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지만 과거와 다른 대변 색과 모양이거나 배변 습관이 바뀌었다면 한 번쯤은 대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대변을 보고 나서 자신의 똥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냄새까지 구리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이런 얘기를 여과 없이 담고 있다. 사진과 그림은 흑백이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한 예를 들면 18세기 귀부인이 하녀의 도움을 받아 관장을 받는 삽화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대장을 비워 변비나 설사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책 표지도 ‘똥색’이며 제목 글은 황금색이다. 황금색 똥이 건강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일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년 전 서울의 낙원 상가에 2평 남짓한 가게에서 평생 전자부품을 팔아 큰 부를 이룬 사람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당시 나이가 70대 중반이었던 그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였다. 피부가 탱탱했고 눈이 맑았다. 인터뷰 뒤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말에 ‘오줌을 마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 운동다운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자신의 오줌을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마신다고 했다. 실제로 그 효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19세기까지 의학과 약학에서 인간의 똥오줌을 이용했던 전통적인 처방들’이란 내용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대머리는 사람의 똥을 달여서 찜질하고, 암은 사람의 똥을 달여서 마시라는 처방이 있었다. 의사와 약사들의 처방이 이 정도 수준이었고, 그 이전에는 똥과 오줌으로 점을 본다는 점쟁이들이 득세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무튼 사람은 오래전부터 똥과 오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도 ‘대변론’에서 치료와 예방이라는 목표를 위해 대변을 수분성, 점착성, 타액성, 거품성 등으로 분류했다. 현대 의학에서 분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바꿔 말하면 똥과 오줌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똥과 오줌에서 건강을 유지하거나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오줌은 '지린내'라고 불리는 특유의 향기를 발산하는데, 그것은 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17세기와 18세기에 로마의 여인들은 오줌에 장미 향기를 내기 위해 특별한 물약을 마셨다고 한다."

 

2011년 박완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을 만난 적이 있다. 국내에서 박 박사만큼 똥에 대해 연구한 사람도 드물다. 분뇨 정화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치고는 조금 고약한, ‘똥 박사’라는 별명이 그를 따라다닌다. 1982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한강에서 나는 악취를 해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박 박사가 손을 들었다. 인분부터 가축 분뇨까지 똥이란 똥은 다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다. 평생 분뇨 처리 생활 오수와 가축 분뇨 처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화학물질 대신 청국장에도 있는 바실로스 균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을 찾았다. 맑은 강을 볼 수 있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그의 숨은 노력으로 맺어진 결실이다.

 

과거에도 이런 노력이 있었다. 이 책의 초반부에 '대변학.소변학 개론'이 있다. 논문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지겹거나 어렵지 않다. 특히 요강, 변기, 화장지의 역사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돌로 ‘뒤처리’하던 인간이 비데까지 발명하는 과정을 훑어보면서 뒤처리는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유목생활을 하던 과거에는 온 숲이 집이며 화장실이었다. 냄새가 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정착생활을 하면서 배설물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이를 해결하는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똥 푸는 펌프를 개발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발명했다. 즉 똥과 관련한 산업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같이 성장해온 것이다. 저자는 똥오줌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인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이 책에서 역설한다.

 

"가장 개화된 국가들이 도시를 축조했을 때, 드디어 인간은 혼잡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집중화된 주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오물에 의해 끔찍한 환경에 처했다. 그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배설물 가운데 묻혀서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질병과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싸놓은 똥오줌 때문에 죽다니, 가공할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고대의 화장실에서 현재 우주선의 화장실까지의 분뇨 처리 역사는 흥미롭다. 우주선에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복잡한 과학과 많은 돈이 필요한지도 이 책을 읽고 알 수 있다. 15시간 이상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사람의 배설을 처리하는 일은 비행 자체만큼이나 해결하기 까다로운 것이었다고 한다. 자칫 화장실이 막히기라도 하면 날아다니는 분뇨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과 오줌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방식도 개발됐었다는 내용이 이 책에 있다.

 

"비행기 화장실의 또 다른 특별한 변화는 배설물을 '투하' 시키는 방식이다."

 

건강과 배설과의 관계, 화장실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똥과 오줌에 대한 소소한 사실도 군데군데 녹아 있다. 예컨대 한 사람이 하루에 누는 오줌량은 1.5L이고 똥은 220g이란다. 세계 인구 50억명이 매일 75억L의 오줌을 누고 11억Kg의 똥을 싸는 셈이다. 또 저자는 어렵게 구했다며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행한 연구 결과와 1994~1996년 미국인과 프랑스인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도 붙였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집 밖에서 화장지가 없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자의 절반 정도는 '나뭇잎을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 손, 수표, 흙, 양말, 셔츠, 돌 등을 사용한다고 답했는데, 닦지 않고 다시 옷을 입는다는 대답도 17~20%나 있었다. 배뇨 후에 몸을 떠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답한 미국인 남자와 여자는 각각 49%와 29%이고 프랑스 남녀는 각각 55%와 34%다. 이 외에도 ‘변이 변기의 물속에 떨어지면서 튀어 엉덩이에 묻는 것을 두려워하느냐’는 다소 민망한 질문이 있는가 하면 ‘소변 후에 손을 씻느냐’는 현실적인 질문도 있다.

 

배뇨 자세와 ‘발사’하는 힘에 대한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예로부터 자신이 발사하는 오줌의 힘과 강도를 측정해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3.4m의 유럽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벨기에인이 있는가 하면 미국인은 4.2m로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배뇨 자세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앉아서 누군가 하면 어떤 데서는 서서 누기도 한다. 서구에서 남자는 선 자제로 성기를 한 손 혹은 두 손으로 쥐고 눈다. 이것은 여자들이 맛볼 수 없는 포만감을 선사하는 남성 특유의 자세다.”

 

요즘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대세다. 소유하는 물건을 적게 할수록, 욕심을 버릴수록 행복해진다고 한다. 우리 건강도 먹는 것 못지않게 잘 비워야 유지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 데다 판형도 A4 정도로 크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화장실에 두고 ‘똥을 쌀 때’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아쉽게도 ‘똥오줌의 역사’는 절판된 책이다. 책이 다시 발간되길 기대한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