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41 10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인가? - 영화 <미 비포 유>




글. 신동욱 교수(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MGM



영국의 한 시골도시에 살면서 카페 점원으로 일하던 루이자 클라크(루, 에밀리아 클라크)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미 그의 아버지는 실직상태였고, 동생은 공부를 하러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 절박하게 일자리를 구하는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일은 ‘장애 남자를 돌보는 간병인’ 자리뿐이었다.


“새로 들어왔네요. 집에서도 안 멀고.. 옷은 좀 점잖게 입어야 할 거예요. 장애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인데 운전, 식사 각종 도우미네요. 기간은 딱 6개월. 보수도 좋네요. 엄청 좋아요. 벌써 다섯 번이나 공고를 냈네. 급한 모양이에요. 따로 요구하는 기술도 없고, 당신한테 딱이에요.”(영화 미 비포 유 中)


그녀가 소개받은 일자리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윌리엄 트레이너(윌, 샘 클라플린)를 돌보는 것이었다. 도시의 명문가인 ‘트레이너’ 가문의 아들인 윌에게는 남자 간호사가 별도로 있고, 집안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윌의 기분을 맞추어주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원래 따뜻한 천성을 가진 루는 윌에게 최대한 잘 해주기 위해 다가가지만, 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루를 받아들이지 않고 차갑게 대한다. 


그러나 윌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루에게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산책을 나가기 시작하며 점차 친밀감을 높여 간다.

 

함께 정원에 산책을 나간 윌과 루 MGM


그렇게 둘 사이의 친밀감이 높아져가던 중, 루는 윌의 부모가 싸우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윌의 아빠: 윌과 약속했잖소. 6개월이라고.

윌의 엄마: 그 애 마음을 돌릴 시간이라고 생각했지. 아들이 죽는 걸 돕겠다니.

윌의 아빠: 저번처럼 혼자(자살 시도를) 하는 것보단 낫잖소. 그냥 한번 해 본 게 아니라 진심이었단 걸 당신도 알잖소. 이렇게 하면 그 애 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해 줄 수 있어요.

윌의 엄마: 내 아들이에요.

윌의 아빠: 내 아들이기도 해요! 그 애의 선택이오. 윌이 원하는 거라고. 그 애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잖소. 

윌의 엄마:  6개월 유예를 줬으니 설득할 수 있어요.

윌의 아빠: 저 예쁘장한 아가씨를 믿어 보는 거요?

      (영화 미 비포 유 中)


윌의 부모가 다툼을 하는 장면 MGM


윌의 부모가 다투는 장면을 본 루는 자살 감시반으로 고용된 것 같아 이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서 윌에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것을 계획한다. 둘은 함께 클래식 음악회에 다녀오기도 하고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윌은 부모님과 약속한 6개월이 다 되었다며, 결심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테라 샤록(Thera Sharock) 감독의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영국 작가 조조 모예스(JojoMoyes)의 6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 배우들로 극찬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반안락사 단체에서는 “Not Yet Dead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 영화가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삶보다 죽음이 더 고귀하다는 인식과 의사 조력 자살을 조장한다면서 반대 시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안락사라고 하는 무거운 이슈를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전하고 있다. 찬반이 뜨거운 주제지만 영화는 상황을 보여줄 뿐,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에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영화를 보면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윌의 입장이 되기도, 루의 입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윌이루의 사랑을 받으며, 그가 가진 부를 통해 최대한 누리면서 사는 것에 만족해 하면서 둘이 함께 살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대립하는 윌의 아빠와 엄마도 그런 스토리였다면 모두 행복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윌은? 영화 중간 중간 윌은 ‘자신의 몸은 장애가 있지만, 자신의 뇌는 멀쩡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엄마에게 ‘내가 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윌의 아빠도 본인도 이 상황이 슬프지만, 윌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임을 강조한다. 제 3자들은 윌은 다행히도 막대한 재산이 있으므로 헌신적인 새 여자친구와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루와 사랑을 확인하긴 했지만, 윌은 여전히 이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면서 과거의 화려했던 날들과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그것을 모두 고려한 후에도 지속되는 선택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윌을 삶의 의지가 약하다고, 주변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한다고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서도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삶의 마무리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이 영화는 영구 장애에 대한 것이고, 말기 환자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직접 관련은 없을 수 있겠지만, 난치성 질환이나 영구적 중증 장애에 대한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 거리가 될 것이다. 말기 환자들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연명치료의 대안이 되어야 하듯, 난치성 질환이나 영구적인 중증 장애 환자들에게도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의료적, 사회적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함은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논의하기 전부터 충족되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다. 그렇지만, 장애 말고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윌처럼 여전히 죽음을 원하고 선택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제목 Me Before You는 무슨 뜻일까? 

"당신이 오기 전의 나". 지금과 너무 다른, 완벽한 삶의 살았던 나.

"당신 앞에 선 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당신보다 내가 우선" 그렇지만 당신들의 바램보다는 나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의지.


그런 딜레마적인 상황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윌리엄, 애칭으로 윌(Will), 즉 의지(意志)라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